'말씀이 없어 못 하는 것이 아니다.
정심(正心)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껏 말씀은 흘러 넘치게 많았으나
인간들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인하여 이렇게 된 것이다.
항상 말씀은 곁에 있었고
그 형태는 경(經)으로, 전(傳)으로, 설(設)로, 어(語)로, 기타 등등으로 존재하였으나
정심에 들지 않은 인간들이 보기에
항상 본질이 보이지 않음으로 인하여 오도된 진리만 행해져 왔다.
정심 역시 내 가슴 속에 있으며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심이 있는 곳에 모든 것이 있어 왔으며
정심이 열리면서부터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재평가된다.
정심의 실체는 고행이다.
고행이 정심의 실체이며
고행이 아니고는 정심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고행은 일상에서의 고행이다.
금식, 철야 등은 고행의 '에너지 코스'로서
그 자체는 아닌 것이며
금욕은 금식의 전 단계이다.
고생의 진수는 무아(無我)로서
무아란 결코 쉽게 오지 않는 것이다.' [한국의선인들3, 214]
말씀이 없어 못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늘 어떤 말씀을 기대합니다.
결정하기 힘든 상황이 오면,
내가 원하는 상황으로 결정을 내리려 합니다.
어찌보면 저 길이 바른 길인 듯 한데,
힘든 길이 될 듯 하여,
주저합니다.
그리고는 만일 그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면,
어떤 징표를 달라고 원합니다.
기적이 일어나면 그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걸 믿고 감수하겠다...
뭐 이런 식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길로 갑니다.
말씀이 없어서 그리 안했다는 위안을 삼으며...
하지만, 사실, 늘 말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제껏 흘러 넘치게 많았으나,
그걸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인하여 이렇게 된 것입니다.
수 많음 진리의 말씀들이 있었지만,
그걸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 인간들이 '정심'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정심의 실체는 '고행'이라고 합니다.
고행을 하려는 마음가짐,
고생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그것이 바로 정심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바르지 않은 길로 인도하는 것은 바로,
그 고행을 피하려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고생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꺼이 고생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 두려움을 이겨낸다면,
바른 길이 보일 것 입니다.
고행이란,
금욕, 금식, 철야와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고행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일상에서의 힘든 일을 감수하는 것,
그것이 고행이라고 합니다.
이미 흘러 넘치는 말씀들을 외면하지 않고,
고생을 감수하고 기꺼운 마음을 가진다면,
바른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정심이란
바른 마음이며,
바르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고생에 대한 두려움을 이긴다면,
흔들림은 없을 것입니다.
정심의 실체는 고행입니다.
일상에서의 고행, 고생입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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