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원하는 바가 있으니
바로 견성이다.
허나 본인이 이것을 원하고 있는지를 아는 데까지만도
수천인연을 거쳐서 알아지게 되며,
알아진 후에도 또 수천 인연을 거쳐 견성에 다가가는 것이니,
인연이란 꼭 밖에 있는 것뿐이 아니요,
내 안에 있는 것과의 만남도 인연인 것이다.
오히려 내 안의 나와의 인연이 더욱 소중하며 가꾸어야 하는 것이고,
밖의 모든 것들 역시 모두 나의 간접 형상인바,
내부의 나에 비하면 그 영향이 표면적이다.
참나와의 견성은 절대 그냥 나오지 않는다.
피눈물 나는 고행의 끝에 자신을 발견하게 되며,
자신을 발견한 후 참공부가 시작되는 것이니,
참공부의 시작은 참나와의 동화과정이니라.
나와의 만남 사이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 역시 나이니,
어떤 나가 도움이 되고
어떤 나가 방해가 되는 것인지는
스스로 호흡 속에서 분별해 보면 나타나는 것이니라.
버려야 할 나를 간직하고 있는 것은 없느냐?
- 있사옵니다.
어찌하겠느냐?
- 버리도록 하겠습니다.
버려야 할 나 중 분별해 보도록 하여라
-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본성과의대화2, 51]-[한국의선인들4, 180]
견성에 대한 얘기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원하는 바가 바로 견성이라고 합니다.
단지 본인이 이것을 원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을 뿐이라고 하네요.
그걸 원한다는 걸 아는 데까지만도 수천인연이 필요하다고 하니,
견성이라는 걸 알고, 그걸 하고 싶어한다는 것만도 참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그걸 알고 있어도,
견성에 다가가기 까지에도 수천인연을 거쳐야 한다고 하니,
참 지난한 길인가 봅니다.
그럼 인연이란 뭘까요?
'인연은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만남'
- http://blog.naver.com/shleewits/70114310297
이란 포스팅에서
인연이란 만남이며, 그때 그때 필요한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즉, 수천번의 만남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바가 견성이라는 걸 알고,
또, 수천번의 만남을 통해서 견성에 다가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만남이 밖에 있는 것 뿐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과의 만남도 인연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나와의 인연'이 더욱 소중하며 가꾸어야 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견성이란
'참나'와의 만남인데,
그 만남을 위해서는 수천번의 나와의 만남을 거쳐야 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때의 수천번의 나와의 만남에서의 '나'는 어떤 나인가?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나의 모습들이겠지요.
그 수많은 나와의 만남을 통해서,
어떤 나가 참나와의 만남에 도움이 되는 나이고,
어떤 나가 방해가 되는 나인지를 분별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분별의 방법은 호흡 속에서 분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소중히하고 가꾸어야 하는 '나와의 만남'이란,
호흡 속에서 늘 나를 발견하고,
그 '나'가 도움이 되는 '나'인지, 방해가 되는 '나'인지
끊임없이 분별하고, 버리고 하는 과정이 바로,
수련을 위한 과정일 것 같습니다.
그러한 과정이 또한
피눈물 나는 고행의 과정이며,
그런 과정을 통해 참나를 발견하고,
또 발견한 후에는 '참나와의 동화'라는 '참공부'의 과정에 들어가게 되겠지요.
그러한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나와의 인연' '나와의 만남' 입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나는 어떤 나인가?
버려야 할 나인가?
간직해야 할 나인가?
호흡 속에서 찬찬히 분별해 봅니다.
본성과의 대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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