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은
내가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내가 창조한 나의 삶으로
내가 달라지는 것이고
내가 달라짐은
더욱 달라질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이니,
어찌 즐겁게 삶을 보내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한국의선인들3, 235]
지난번 포스팅 '흔들흔들 흔들리는 그것이 바로 나'
(http://blog.naver.com/shleewits/70110690045)
에서는
나를 흔들게 하는 어떤 현상은 변하지 않는데,
그것을 보고 흔들리거나 흔들리지 않는 결정을 하는 것,
또는 흔들리는 그 자체가 바로 '나'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포스팅 '음양의 존재이유' (http://blog.naver.com/shleewits/70110760317)
에서는
그러한 흔들림을 주기 위해서 지구엔 '음과 양'이 존재하는게 하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떠오른 생각은...
결국은
나라는 존재는 껍질을 까고 또 까보면
결국 남는 것은 그 흔들림인데, 그 흔들림이란 다른 말로는 '판단, 결정, 선택하는 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원리에 대한 내용 중에
'성(性),명(命),정(精)'에 대한 설명이 떠올랐습니다.
'성'에 의사(意思)가 들어가면 '명'이 된다는...구절...
검색을 해 보니 이웃분이 예전에 올려놓으신 글이 있군요...
성(性)- 우주의 근본자리, 변하지 않는 자리.
이 상태에서는 아무 느낌이 없고 분자로만 채워져 있으며 생명이 태동할 수 있는 가능성 만 지니고 있음.
명(命) - 성(性)에 의사(意思)가 들어가 음양으로 분리(움직임)가 시작된 상태.
정(精) - 성이 구체화되어 물질로 나타난 상태.
명에서 음양을 결정하고 나서 생명이 태동되어야겠다고 결정이 나면, 그 때부터 구체적 으로 형체를 띠게 되는데 그렇게 물질화되어 나타난 것.
(출처 : 성 명 정 -부제; 생각대로 T http://blog.daum.net/gyurina/17325779)
여기서 말하는 '의사' 즉 '뜻'이 바로 그 '흔들림'이며, '판단,결정,선택하는 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주의 근본자리인 '성'에 의사가 들어가 음양으로 분리가 시작되면서 '명'이 생기고 그 것이 구체화 되어 물질로 나타나면서 '정' 즉 생명이 되는 것이라면,
핵심은 바로 그 '의사', '의지', '뜻'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괜히 철학적인 내용이 나와서 좀 어려워진 듯 하지만,
그림은 심플합니다.
결국은 '판단하고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그것이 바로 '나'라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란 순간순간의 선택의 결과이며,
나란 존재도 그러한 선택의 결과가 집약된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도 외부로 부터 주입된 것이고,
나의 몸도 내가 섭취한 영양분이 변한 것이며,
심지어 나의 생명의 태동 조차도 부모님의 정자와 난자의 수정에 의해 시작된 것이니,
물리적으로 나를 구성하는 것은 모두 외부로 부터 들어온 것이며,
심리적 정신적으로 나를 구성하는 것도 선천적인 것 50%와 후전적인 환경에 의한 것 50%로 구성된 것입니다.
과연 나는 무엇인가?
과연 나는 없는 것인가?
(대학땐 이 부분에 막혀서 답을 못찾았었는데...)
나란 바로 그 '의사'가 아닐까요?
아주 작게 본다면 그 '의사'가 나이며,
크게 본다면
내 몸이 나이고,
내 이웃이 나이고,
자연이 세상이 만물이 우주가 모두 나인 것이겠죠...
'내가 없는게 아니라 전부가 다 내가 아닐까?'
(http://blog.naver.com/shleewits/memo/70110331520)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며
나의 삶은 순간순간의 판단과 선택이 누적된 것이라고 한다면,
'내가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나의 삶'이겠지요.
또한 그것이 바로 '나'일 것이구요.
그러기에
'내가 창조한 나의 삶으로 내가 달라지는 것'이라는 표현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순간순간의 판단으로 나와 내 삶을 창조해나가는 기쁨을 갖는 것이죠.
그 판단은 단순합니다.
이쪽이냐 저쪽이냐겠죠...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진화의 방향이냐? 퇴화의 방향이냐?
그 방향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공부를 하는 것이고,
그 알게된 것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알아낸 방향은 어제의 포스팅
'모든 일을 원한가고 완전하게 처리하는 공부'
(http://blog.naver.com/shleewits/70111352412)에서 좀 정리되었습니다.
모든 일은 원만하고 완전하게 처리하도록 노력하는 것,
그 핵심은 '하나되기'입니다. KLO의 최종단계인 O stage (하나되기 단계)
사람 먼저이며, 관계 먼저입니다. (물론 다음엔 자연.. 하늘... 등과의 관계도 있겠지만...)
한마디로 한다면 '하나' 'ㅎ.ㄴ' 입니다.
분리하는 쪽으로 선택할 것인가?
하나되는 쪽으로 선택할 것인가?
무수히 만나는 순간순간 마다 '하나되는' 방향으로 선택해 나간다면,
아름다운 창조물인 '나'를 만나게 될 것 입니다...
분리하는 쪽은 '갈등'이며...
하나되는 쪽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