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련을 왜 하는가?
정성의 대상은 자신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향하여 정성을 들임으로써
인간은 이루고 싶은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나는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내가 수련을 하는 이유는 뭔가?
뭘 이루고 싶은건가?
허허...
별로 이루고 싶은건 없는데...
왜 수련을 하는가?
알고 싶어서...
내가 뭘하면 좋을지 알고 싶어서,
나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그렇게 방황을 시작했나봅니다.
진리를 알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때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는 말이 왠지 모르게 끌렸고,
그 후 잠시 덮어뒀던 욕망이 10년 전 쯤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군요...
그리고는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왜 하는가? 생각해보니, 별 생각이 없군요.
"동요는 수단과 목표의 혼동에서 온다"고 했는데,
나는 수단과 목표를 혼동하고 있는가?
내가 생각하는 수단은 수련이고,
내가 생각하는 목표도 수련인가?
수련 잘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우주화가 목표라 함이 바로 그런 의미가 아닌가?
수단과 목표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 맞군요.
목표는 없고 수단만 있는 상태...
"자신에게 정성을 들이는 것을 수단화하라"고 했군요.
자신에게 정성을 들이는 것, 즉 수련은 수단입니다.
그렇다면 목표는?
'자신'입니다.
자신은 수련의 수단이자 목표라고 했지만,
수단으로서의 자신은 자신에게 정성을 들이는 것,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일테고,
목표로서의 자신은 그저 '자신'인 것일겝니다.
정성의 대상, 수련의 대상이 '자신'인 겁니다.
그리고 목표가 '자신'인 거구요...
도대체 '자신'이 어쨋다는 건지...
자신을 위하고,
자신을 통하고,
자신을 단련하며,
자신을 키워서
결국 '자신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고, 자신이 우주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수련의 목표라고 하는데...
그럼 나의 목표는
'모든 것이 가능한 자신'을 만드는 것이라는 건데,
과연 내가 그걸 진정으로 원하는가?
그 목표에 대한 열정이 있는가?
의문입니다...
나는 우주가 되고 싶은가?
나는 내가 되고 싶은가?
진정한 나를 만나고 싶은가?
왜 무기력한가?
왜 의욕이 없는가?
밖으로 향한 눈을 안으로 돌려서
나는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야 합니다.
결국, 나를 모르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군요...
지금 내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 이유는
참나를 모르기 때문이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나에 대한 피상적인 생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영속적으로 원하는 것,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
내가 정말 하고 싶어하는 것,
그걸 알려면,
진정한 나를 찾아야 하는 거네요...
진정한 나를 찾지 못하는 이상,
늘 변화하는 나의 감정과 취향에 따라 나의 목적과 희망은 끊임없이 변해만 갈 것입니다.
첫번째 목표는,
나를 찾는 것,
진정한 나를 만나는 것,
그리고 그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정말 네가 원하는게 뭔지를...
정말 네가 하고 싶은게 뭔지를...
지금의 나는 내가 믿을 수 없는 변화무쌍한 나이기에...
내가 믿을 수 있는 참나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지요...
내가 수련을 왜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찾아야 합니다.
진정한 나, 참나, 변함없는 진짜 나...
Action Item : '우선 진정한 나, 참나, 변함없는 진짜 나를 찾아서 만나야 한다.
그리고, 물어본다.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항상 정성으로 자신을 갈고 닦아라.
정성의 대상은 자신이다.
자신은 지상 최고의 가치이며 둘이 될 수 없는 절대인 것이다.
언제나 자신을 향하여 정성을 들임으로써
인간은 이루고 싶은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자신은 수련의 수단이자 목표인 것이다.
어떤 수련 방법도 자신을 제외하고 가능한 방법은 없다.
자신을 위하고,
자신을 통하고,
자신을 단련하며,
자신을 키워서 결국
자신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고
자신이 우주가 되는 것이 바로
수련의 할 바인 것이다.
수련은 단순하면서도
그 단순함의 실체를 깨닫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단순함 속에 너무나 많은 복잡함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며,
그 복잡한 것이 너무나 단순하다는 원리를 깨닫기 위하여는
복잡함 속에서 세상의 방위를 잊고 헤매어 보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복잡하나 그 원리는 단순하고,
그 단순함으로 풀면 모두 간단하게 풀리는 것들인 것이다.
동요는 수단과 목표의 혼동에서 온다.
자신에게 정성을 들이는 것을 수단화하라.
그것이 수련의 요체이니라.
- 알겠습니다.
자신이다.
자신이니라." [본성과의대화2, 216]-[한국의선인들5, 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