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命)의 조절이 가능하다.
"원래 깨달음은 번뇌 속에 있다.
번뇌의 한가운데 핵을 이루고 있는 것이 각(覺)이며
이 각의 한가운데 명(命)이 있다.
명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각을 통과하여야 하며,
접근이 허락되기 위해서는 각을 득해야 한다.
각은 평소 꾸준한 번뇌의 정리로써 가닥을 잡아야 하며,
모든 것이 얽히고 설킨 상태에서 가닥이 잡히면
내다보는 데 지장이 없다.
큰 가닥은 정리되었으나 아직 작은 가닥이 조금 남아 있어 어지러운 점이 있다.
생시에 득해야 할 것과 실해야 할 것은
수련과 무관하게 따로 있으나,
자신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떠한 득∙실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득이 도움이 되는 경우와
실이 도움이 되는 경우는
본인의 기준이 아닌 하늘의 기준에 따른다.
어떤 일에도 항상 하늘을 의식하면 실수가 없을 것이다.
- 알겠습니다.
- 명에 접근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요?
네 '코스'에서의 탈출이다.
명의 조절이 가능하여지는 것이다." [본성과의대화2, 144]-[한국의선인들4, 267]
1)
원래 깨달음이란 것은 번뇌 속에 있다고 합니다.
번뇌의 한 가운데 핵을 이루고 있는 것이 깨달음이고,
이 깨달음의 한 가운데 명(命)이 있다고 합니다.
명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깨달음을 통과해야 하고,
접근이 허락되기 위해서는 깨달음을 얻어야(득해야) 한다고 하네요.
명에 접근하면 자신의 '코스'에서의 탈출이 된다고 합니다.
즉 명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깨달음을 통과하는 것과
깨달음을 얻는(득하는) 것의 차이는 뭘까요?
또 명에 접근하는 것과
명에 접근이 허락되는 것의 차이는 뭘까요?
- 숙제...
깨달음은 평소 꾸준히 번뇌를 정리함으로써 가닥을 잡아야 하고,
가닥이 잡히면 내다보는 데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번뇌란 모든 것이 얽히고 설킨 상태를 뜻하겠지요.
정리하면,
번뇌의 한가운데 핵을 이루는 것이 깨달음이며,
그 깨달음의 한가운데 명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얽히고 설킨 상태인 번뇌를
평소에 꾸준히 정리함으로써 가닥을 잡아갑니다.
가닥이 잡히면 내다볼 수 있습니다.
먼저 큰 가닥을 정리하고, 작은 가닥을 정리되어
내다볼 수 있으면,
깨달음을 얻어 명에의 접근이 허락되고,
깨달음을 통과하면 명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명에 접근하면 자신의 '코스', '스케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즉 명을 조절할 수 있게 됩니다.
2)
살아있는 동안,
득해야 할 것과 실해야 할 것은
수련과 상관없이 따로 있습니다.
즉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운명이고 코스이고 명입니다.
허나, 자신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 즉
가닥이 잡히지 않아 내다볼 수 없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득과 실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득과 실이란 어찌보면 인생의 굴곡이고,
대운, 소운, 순운 등의 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한 운이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는
본인의 기준, 즉 자신의 욕망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기준에 따른다고 합니다.
하늘의 기준이란
잘되고 안되고가 다르지 않고 모두 같은 것일 뿐이라는 관점일 것입니다.
"잘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는바,
이 모든 것들이 실은 같은 것이다.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구할 것이 있으며,
되면 되는 대로 버릴 것이 있는 것이다." <우주를 다스리는 열쇠는 호흡인가?>
그러므로 항상 하늘을 의식하여 하늘의 기준을 알고 판단할 수 있다면,
그러한 득과 실로 다가오는 운, 명을 도움이 되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요?
득도 도움이 되고, 실도 도움이 된다함은
득과 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고,
굴곡이 굴곡이 아니게 다가온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득/실, 굴곡, 운, 즉 명에 좌지우지 되지 않으며,
명을 다룰 수 있게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다시말해, 명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코스'에서 탈출한다는 것일겝니다.
정리하면,
살면서 내게 다가오는 득과 실이라는 굴곡, 즉 운명은 수련과 무관하게 정해져 있으나,
내 마음이 정리되어 내다보는 눈이 생기면,
즉 깨달음, 각을 얻으면,
득이 오든 실이 오든 모두 도움이 될 수 있으므로,
그 굴곡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휘둘리지 않는다 함은, 거기서 벗어났다는 것이므로,
'코스'에서의 탈출이며,
명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명을 조절한다 함은
내게 다가오는 득과 실의 흐름을 조절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바꿈으로써,
명을 조절하고 코스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일 것 같습니다.
3)
깨달음이란,
번뇌라는 내 눈을 가리는 것들을 정리해서 치우고,
바로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며,
그 바로 볼 수 있는 눈으로
명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그 명이란,
득과 실이 다른 것이 아니며 하나이므로,
하늘의 기준을 가지고 보면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휘둘리지 않음으로 벗어나
컨트롤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명의 조절이 가능해지면,
흔들림이 없어질 것입니다.
코스에서 벗어난다함은
굴곡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그 굴곡이 내게 미치는 영향에서 벗어난다는 것이고,
굴곡의 흔들림에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니,
흔들림이 없어짐입니다.
즉, 무파장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번뇌 속에 있다함은
번뇌라는 흔들림 속에서 휘둘리지 않고 보는 눈을 가지는 것이 각이요.
각을 통해서 명에 접근하면
삶 속에서 내게 다가오는 굴곡 즉 운을
호불호라는 본인의 기준이 아니라
모두 하나라는 하늘의 기준으로 볼 수 있게되므로,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번뇌를 거쳐 깨달음에 이르고, 깨달음으로 명에 다가가며,
명을 바로봄으로써 삶에서의 흔들림을 없애 무파장의 경지에 가는 것입니다.
명의 조절이란,
명에서의 탈출이며, 다가오는 굴곡에서 흔들리지 않은 것이다.
흐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에서 나를 빼내는 것이며,
그 빼내는 방법은 흐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역시 생각의 방향을 안으로 돌리는 것~
본성과의 대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