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과 개성
'항상 마음을 가라앉혀라.
마음을 가라앉힌 후 자신을 보라.
신과의 대화는 자신과의 대화이며
신과의 만남은 자신과의 만남인 것이다.
자신과의 만남은 마음이 가라앉았을 때 가능하다.
마음이 가라앉아 앞이 멀리 내다보일 때
그 맨 끝에 자신이 있느니라.
자신과 나 사이에 있는 모든 장애물을 딛고 설 수 있을 때
자신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여기에서의 자신은 곧 자성(自性)이다.
자성은 우주이다.
누구에게나 자성은 우주인 것이다.
너의 우주가 따로 있고
나의 우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
너의 우주이건 나의 우주이건 모두 하나의 우주인 것이다.
자성에서 '나'로 독립된 존재로 개체화하면서
개성이 나타나는 것이며,
이 개성이 어느 정도의 수련으로 본성으로 접근한 후,
모두 비숫한 정도의 과정을 거쳐
동일시의 과정으로 드는 것이니라.
수련은 쉽지 않다.
개성의 본성화가 어찌 간단하고 안이한 방법으로 가능할 것이냐?
나를 버림으로 얻어지는 것이 본성이니라.' [본성과의대화1, 288]-[한국의선인들4, 121]
본성을 만나는 것을 견성이라고 합니다.
수련을 하는 사람들은 일차목표로 견성을 두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수련이라는 것은 끝이 없는 것이라,
일단 본성을 만나더라도 그 후에는 본성과 일치가 되는 과정이 더 본격적인 수련이겠지만,
일단은 본성을 한번 보기라도 해야겠기에 '견성', '견성' 하는 것이겠지요...
불가에서도 그렇고...
여기서 말하는 자신이 바로 자성이고 그 자성이 바로 본성입니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을 중요시하는 이유가
바로 본성을 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가라앉힌 후 자신을 보라고 합니다.
신과의 대화는 자신과의 대화이며
신과의 만남은 자신과의 만남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본성과의 만남이라고 하겠지요.
내안에 있는 신성이 바로 본성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자신, 자성, 본성, 우주, 신 이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
마음이 가라앉아 앞이 멀리 내다보일 때
그 맨 끝에 자신 즉 본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신과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과 나 사이에 있는 모든 장애물을 딛고 일어 설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맨 끝에 있는 자신이 곧 자성이고 본성이고 우주입니다.
이 자성은 너의 우주가 따로 있고, 나의 우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
너의 우주이건 나의 우주이건 모두 하나의 우주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너의 자성이건 나의 자성이건 모두 하나의 자성인 것이죠.
모두 하나의 본성이기도 하구요...
그러므로,
인간이란 독립된 개체는
본성 즉, 자성이 '나'라는 독립된 개체로 개체화하면서 개성이 나타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에서 나와 각자의 독립된 개체가 되었다는 것이죠.
수련이란,
우리가 나온 곳, 그 하나을 찾아서 알고 만나고 하나가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것을 안다면 우리 모두가 하나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지금처럼 분열되고 분리되어 경쟁과 싸움을 일삼지는 않겠지요.
모두 하나임을 안다면,
손이 발을 해치게되면 결국 발이 상해서 손도 피해를 입게된다는 걸 알테니까요...
지금은 그걸 모르고, 모두들 자신만을 위해서 남을 무시하고 착취하고 억압하고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겠구요...
하지만,
그 수련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개성의 본성화가 결국 수련인데,
그것이 간단하고 안이한 방법으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개성의 본성화란
나를 버림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나를 버릴 수 있을까?
나를 버리는 것이 진정 버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 가능할까요?
우선 본성이 무엇인지를 아는게 문제겠군요.
나를 버려 얻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텐데...
하지만, 지난번 포스팅에서는 ( http://blog.naver.com/shleewits/70124956950 )
또 수련이란 다른 뭔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수련을 위한 수련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수련과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힌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본성을 위해 나를 버리라고 하더라도,
본성이 뭔지도 모르고,
난 본성이 중요한게 아니야.
라고 한다면, 그냥 스톱인거죠...
지금의 나도 본성만큼 중요하고, 본성이 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나보다 더 중요한게 없기 때문이구요...
물론, '나'라는 걸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겠지만...
우선은 진정한 '나'라는 걸 제대로 인식하고,
그 '나'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인식한다면,
실마리가 풀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를 버림이란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확장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나의 영역을 계속 확장시키는 것,
그것이 조금은 그쪽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요?
수련이란 결국은 모두가 하나라는 걸 알고,
그 하나로 동일화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동일화 과정이란 바로 나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일 것입니다.
돈오돈수 방식으로 한번에 나의 영역을 확 넓히는 방법이 있겠지만,
돈오점수 방식으로는 조금씩 조금씩 나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방법도 있겠지요.
모두가 하나가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숙제는
나의 영역을 확장시켜 우주까지 나아가는 방법,
나와 수련을 일체화하여 수련을 체질화하도록 하는 방법,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듯 합니다.
본성과의 대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