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은 수련을 위해서만
'사람이 수련을 함에 있어서는
마음이 우선이나
몸과 마음을 함께 움직여야 하는 경우가 두 가지 있다.
그 첫째는 수련을 위한 경우이고,
둘째는 일을 위한 경우이다.
수련에 관계되는 한
몸을 움직이는 것이 낫다.
호흡을 비롯한 모든 것이
몸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을 위한 경우는
자신을 위한 일에 한정된다.
자신을 위하는 것은
가장 수련에 필요한 것이므로
자신을 위하는 일은
준수련적인 부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아직 타인을 위해서까지
의식을 분배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자신이나 수련을 위한 일에 국한하여
의식과 몸을 사용하고
기타의 일에는 가급적 가볍게 생각하고 넘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볍게 생각하고 넘긴 것은
의식에 깊이 두지 않는 것이 좋으나
수련에 관련된 일은
가급적 기록을 남기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의선인들3, 234]
수련은 몸과 마음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음공부라고 하면 마음만 갈고 닦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몸과 마음을 함께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일을 위해서도 몸과 마음을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하는데,
그 경우에도 자신을 위한 일에 한정된다고 합니다.
수련이란
자신으로 부터 시작되므로,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에 우선 전력을 다하고,
그 후에야 뜻을 세우고, 그 뜻을 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전에 섣불리 타인을 위한 일에 나서는 것은 삼가하라고 합니다.
그 메카니즘은 지난번 포스팅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나와 나 아닌 것 즉 타인에 대한 관점이 일반적인 시각과 다름에 있습니다.
내가 있고, 나의 확장이 곧 타인이 된다는 논리이기 때문에,
내가 없다면 타인조차 있을 수 없고,
없는 내가 타인을 위한다는 것은 헛된 일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위한다는 것은
나를 바로 세우고,
나의 크기를 키워, 타인을 내 안에 품고,
그 품은 타인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위함이며 지속될 수 있는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바로 서지 않고는 타인을 위해서 의식을 분배하는 일을 삼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몸과 마음을 수련을 위해서만 사용하라고 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수련이란 것이 작은 것이 아니라,
처음 시작은 자신을 갈고 닦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나와 남을 아우르고,
세상과 만물과 자연 그리고 우주까지도 아우르는 범위의 움직임을
모두 수련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엔 모든 삶이 수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활과 수련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수련을 기반으로 하여 크기를 키우다보면,
모든 생활 조차도 수련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에,
수련을 위해서만 몸과 마음을 사용하라고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생을 하나의 흐름에 맞춰서 풀어나가라는 뜻이겠지요.
우리의 인생이
다양한 편린들로 조각나 있으며,
우리의 의식도 하나로 흐르지 않고
순간순간 처한 환경과 상황과 주변에 영향을 받으며,
즉자적으로 움직이므로,
진정한 나의 삶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인생의 순간순간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맥락을 같이하고,
방향성을 가지고 의미를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의식을 깨워서 모든 순간들이 수련의 순간 즉 자신을 갈고 닦는 순간들이 될 수 있도록 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몸과 마음을 수련을 위해서만 사용하라는 뜻일 겁니다.
이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개념의 수련이 아닌 것이죠...
자신을 세우고,
뜻을 세우고,
그 뜻을 펴는 전 과정이 바로,
나의 삶이요,
그 삶이 곧 수련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