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의 존재 이유
'항상 이 세상에는 암수, 음양 등으로 그 상대방이 존재하여 왔으며 그들은 원래 둘이 아닌 하나로서 완전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반드시 합해져서만이 아닌, 상대의 존재 그 자체로서 완전이 되는 것이다.' [한국의선인들3, 225] 어제 포스팅에서 흔들림이 있어야 자신을 찾을 수 있다고 했고, 마음을 잡는 것과 흔드는 것 속에서 차츰 동요의 진폭을 줄여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암수, 음양 등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흔들림을 주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중에 하나만 있다면, 동요의 진폭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한 쪽으로 치우쳐 버릴 것이므로 불완전한 상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음양은 합쳐져야만 완전해 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존재 그 자체로서 완전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진폭이 있으려면, 음양의 양쪽이 다 있어야 하는 것이죠. 흔들리는 그 자체가 자신이라고 한다면, 흔들리게 하는 음양이 반드시 필요하겠구요... '완전이란 꼭 우주의 형태는 아니다. 그 때마다 해당 수준에서의 완전이면 족하다. 식물은 식물 수준에서, 동물은 동물 수준에서 하품의 인간은 그 자신의 위치에 맞는 완전이면 되는 것이다.'[한국의선인들3, 225] 완전이 합해져서 하나인 경우도 있겠지만, 존재 자체로 완전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위치, 자신의 수준에 맞는 완전이면 되는 것이겠지요. 반드시 모두가 하나인 '우주'의 형태일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아직은 흔들림이 필요한 수준에서는 합쳐지지 않은 음양의 존재자체가 완전일 것이고, 그 동요의 진폭이 줄어들어 하나로 수렴이 된다면, 그 결국에는 그 수렴되는 지점에서 음양이 합쳐져 하나가 되겠지요. 살아가면서, 항상 나와 다른 것, 나와 반대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고, 때로는 분노를 사기도 하고, 많은 감정의 근원이 되기도 하지만, 그 것이 있기에 지구가 완전을 이루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상대방의 존재로 인하여 나의 흔들림이 생기는 것이고, 그 흔들림으로 인하여 잦아드는 지점인 나의 자리를 찾을 수 있겠지요. 흔들림 속에서 찾은 나의 자리와, 그냥 아무런 흔들림이 없이 그냥 그자리에 있는 것의 차이는 아마도 에너지의 차이가 아닐까요? 흔들림이란 파장인데, 무파장이란 파장의 진폭을 줄여 0으로 수렴되는 곳이 무파장이되겠지요. 무파장이란 아무런 파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파장을 포함하고 있으되 흔들림이 없는 것이 바로 무파장일 것 같습니다. 그래야지만이 아무런 움직임이 없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에너지를 품고 있겠지요. 무수히 많은 파장들이 서로 상대방의 존재로 인하여 상쇄되고 진폭을 줄여나가는 상태... 그런 상태가 바로 무파장일 듯 합니다. '항상 가부가 하나임을 알고 그 사이에서 답안을 찾는다면 모든 것은 의외로 쉽게 해답이 나올 수 있다.' [한국의선인들3,225] 항상 가부가 하나임을 알고 그 사이에서 답안을 찾으라고 합니다. 보통은 가부간에 결정을 내리라고 하고, 가부 중에 선택을 하려고 합니다. 답안이 그 사이에 있다고 합니다. 둘중 하나가 답이 아니라...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 사이에 답이 있다고 합니다. 흑백논리를 벗어나, 그 사이에서 양쪽을 다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약간은 정의 방향으로 잡아주는 것, 그것이 답이라고 합니다. 중용이 바로 그것이겠지요. 세상사 수많은 답답한 일들을 모두 그 존재의미를 인정하고, 그 사이에서 답을 찾아 나간다면, 뭔가 해결책이 있을 듯도 합니다. 결국은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것... 그리고 그 양쪽이 있어야지만이 완전해 진다는 걸 인정하는 것... 쉽진 않지만, 뭔가 새로운 방향일 듯 합니다.